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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山이름 찾기 / 마유산(유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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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山이름 찾기 / 마유산(유명산)
 


▲ 마유산 정상.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위치한 유명산(有明山·861m)의 옛 이름은 마유산(馬遊山)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분명하게 ‘마유산’이라 적고 있으며, <산경표>에서도 ‘마유산’이란 이름과 함께 ‘楊根 北 二十里’라는 설명이 있다.
정상 부근의 초원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마유산이라 불렸다는 이 산이 ‘유명산’이란 새 이름을 얻어 걸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1973년 엠포르산악회의 국토중앙자오선종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고작 30여 년이 흘렀을 뿐이다.
1973년 12월 <산악인> 창간호에 “자오선 따라 428km, 국토중앙자오선 종주운행”이란 제목으로 실린 엠포르산악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72년 세천(細川)에서 순천까지 1차 종주에 이어, 2차 73년 가평을 출발하여 세천까지 종주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은 동경 127도 30분을 따라 국토를 종주하고 통일 후에는 3차 함흥에서 가평까지, 4차 후주고읍에서 함흥까지 등 북한지역까지 총연장 764km의 자오선 종주를 이어갈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박동준 대장을 비롯하여 김지련 부대장, 정춘길, 이건일, 최정국, 유용주, 이길원, 최동국 대원으로 종주대가 구성되었고, 한국일보 김운영 기자가 취재를 담당했다.
진유명씨(晉有明·당시 27세)는 73년 2차 종주에 참가했던 대원이었다.
당시 이들의 종주기는 일간스포츠에 매주 연재되었는데 이때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이 산을 홍일점 대원이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 ‘유명산’이라 칭한 것이 지금까지 이 산의 이름으로 굳어져 이어졌다.
자오선종주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이 산을 그저 앞산이나 뒷산 정도로 불렀다고 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토록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수려한 조망을 지닌 산이 아무 이름도 없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던 종주대가 산의 이름을 지어 발표한 것이다.
당시 종주대의 운행대장을 맡았던 김지련씨(작고)는 74년 1월호 <산악인>지에 ‘유명산과 마유산’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는데 이 글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름 모를 866봉은 우리 여성대원 진유명의 이름을 따서 종주대장의 직권으로 유명산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73. 3. 11 국토중앙자오선종주대 일지에서”
 


▲ 정상 부근의 억새밭 사이를 지나는 참가자들. 말을 길렀다는 옛 말처럼 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종주대장의 직권으로 명명

새벽부터 간간이 흩뿌리던 가을비는 두물머리를 지나 남한강을 따르는 6번 국도를 달리는 사이 점점 더 굵어졌고, 유명산자연휴양림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일행 중 몇몇은 우산을 꺼내 쓰고, 몇몇은 재킷의 모자를 올려 쓰고, 또 몇몇은 등산로 입구 가게에서 노랗거나 하얀 비닐 비옷을 사 입었다.
그리고는 ‘유명산 등산로·계곡 입구’라 적힌 아치형 안내판 사이로 들어선 후 ‘유명산가든’과 ‘명산쉼터’ 등을 지나 ‘유명산자연휴양림’의 야영장과 산막 등을 지나 ‘유명산 등산안내판’을 보고 ‘유명계곡’을 따라 산으로 접어들었다.
어디에서도 ‘마유산’이란 이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구지계곡’이 필시 본 이름일터이지만 지금은 ‘유명계곡’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계곡에는 불어난 물줄기가 기세 좋게 쏟아졌다.
박쥐소, 용소, 마당소 등 이어지는 소(沼)마다 검푸른 물빛이 일렁였고, 오를수록 산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입구지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어비산과 마유산의 능선을 거쳐 정상에서 다시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 오늘 산이름 찾기의 여정이었다.
길어야 3시간이면 끝날 코스라 쉬엄쉬엄 오를 것을 당부했건만 일행들의 발걸음은 준마(駿馬)의 그것이었다.
안개 덕분에 고작 십여 미터인 시계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영원프라자 본점 고객 40여명으로 구성된 오늘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올랐다.
안개 가득한 산속에는 또한 가는 여름이 아쉬운 매미소리가 무성했다.
간간이 나타나는 철다리를 지나고, 검푸른 소를 옆에 두고 바위틈으로 난 길을 따라 우산을 든 채 산길을 걷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순례자의 모습처럼도 보였다.
마유산 정상과 어비산(826.7m)을 잇는 능선까지의 오르막은 숨이 찼다.
비는 그쳤지만 덕분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대기는 일행들의 비지땀을 쏟게 했고, 온 몸을 안팎으로 흠뻑 젖게 했다.
굵은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룬 이 가풀막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상수리 열매만 세며 먼 길 달려와 더운 입김 품어대는 말처럼 헐떡대며 한발 한발 올라야 했다.
이윽고 올라선 정상 능선은 드넓은 억새밭. 억새밭 사이로 난 오솔길은 펑퍼짐한 마유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자욱한 산안개 덕분에 넓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름처럼 말들이 뛰어놀 만 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뤄 많은 등산인들이 찾는 산이고 보면 ‘말을 길렀다’는 옛말이 분명 허언은 아닐 것이다.
말들이 뛰 놀았을 억새밭 오솔길을 참가자들은 안개를 헤치며 말떼처럼 무리지어 지났다.
국토자오선종주대의 ‘유명산’ 산명 명명에 따른 논의는 그 당시에도 있었다.
종주 당시에는 정확한 산명을 몰랐으나 유명산이란 산명 발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유산’이란 본명을 알게 된 것이다.
74년 1월호 <산악인>지에 실린 ‘유명산과 마유산’이란 김지련씨의 글에는 제목에서 보듯 이미 마유산이란 산이름이 등장하고, 또한 기사 중에는 마유산이라 표시된 대동여지도의 일부분도 함께 수록되어있었다.
1968년 창립 이래 북한산에 엠포르산장을 세우고, 70년 6월에는 만경대 동측벽에 13개의 암벽등반 루트를 개척하는 등(한국산악 72년호) 왕성한 산악활동을 해 오던 엠포르산악회의 국토자오선종주는 많은 산악인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들이 개명한 유명산이란 이름도 별 거부감 없이 등산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산의 이름은 유명산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서울에서 가깝고 산세가 수려하며 계곡이 깊고, 캠핑하기 좋은 산으로 ‘유명(有名)’한 산일뿐, 개명의 이유와 본명의 유래 등이 명확하지만 아무도 애써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 입구지계곡을 따라 산을 오른다. 유명산이라는 이름 탓에 지금은 유명계곡으로 부르는 이들이 훨씬 많다.



말들이 뛰 놀던 억새밭

마유산 정상에는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해발 862m 유명산’이란 굵은 글씨가 새겨진 정상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기 바빴다.
증명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유명산’이란 이름만 남아있게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이름이 뒤바뀐 산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안개만 피워낼 뿐. 날씨만 맑았다면 동쪽으로 어비산은 물론 용문산과 백운봉이, 서쪽으로는 소구니산과 중미산 등 첩첩한 산들의 너울이 보였건만 오늘은 온통 안개에 사로잡혀 오리무중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말떼가 이리저리 몰려 다녔을 드넓은 초원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인터넷을 통한 대부분의 정보에서 유명산은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이름은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자오선 종주를 하던 중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을 발견하고 산악회 대원 중 진유명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많은 등산인들 역시 이 산의 본디 이름이 마유산이란 사실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개명 노력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는 물론 각종 등산 안내지도에서도 이 산은 여전히 유명산이라 적고 있다.
가평군 지명위원회의 실무담당자 역시 “등산인들 사이에서 유명산의 본래 이름을 되찾자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유명산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각종 상호 등으로 사용되고 있어 현실적으로 개명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밝혔다.
가평군 지명위원회 역시 마유산으로의 개명을 심의한 바 없으며, 공식적인 민원을 접수한 적은 없다고 한다.
현재 엠포르산악회 임시회장을 맡고 있는 우종석씨(45세)는 “기록이 확실하다면 본래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이 옳다”는 김지련 초대회장의 생전의 말을 전하며, 산악회 자체 내에서도 마유산이라는 이름이 확실하다면 개명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우리 산악회로 인해 이 산이 유명해 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반드시 당장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현명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만으로 원래 있던 것을 온통 뒤바꾸는 것을 옳지 않은 일이다.
함께 부르면 어떨까. 무관심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가자들과 함께 마유산이라 적은 우리 산이름 찾기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에도 안개는 사람들 사이를 흘러갔다.
세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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