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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가도 노력이다
이름 ThePeople

하늘과 땅은 만물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 하거늘 사람들은 인생이 짧다고 한탄한다.
과연 우리의 인생이 짧은 것일까.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쓸쓸한 황혼 녘에 이르러서야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 시간을 이미 다 흘려 보낸 것을 깨닫게 된다.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또는 필요 이상의 부와 명예·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낭비해 왔던가.
더불어 여가시간에조차 얼마나 인색했는지 비로소 후회하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를 생활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행복이 여가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시민생활을 크게 일과 여가, 전쟁과 평화 네 가지로 나누고 일과 전쟁을 위한 교육은 물론 여가와 평화를 위한 교육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사람은 일과 전쟁을 위한 능력을 몸에 지녀야 하지만 여가와 평화를 보다 잘 살리는 능력도 함께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일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은퇴한 다음에나 여가생활을 즐기려고 계획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젊든 늙든 상관없이 여가를 보내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레저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설계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것은 세속의 먼지 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에서 비로소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J 뒤마즈디에는 ‘개인의 자유시간’을 여가의 그릇으로 표현했다.
자유시간이라는 그릇의 확보는 경제와 사회 발전 덕분이지만 그 그릇에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쉬면서 피로를 회복하고, 기분 전환을 하면서 권태를 해소하고 자기 계발을 할 때 비로소 자유시간은 레저가 된다.
그래서 자유시간이라는 그릇을 나름대로 아름답고 쾌적하게 이용하는 지혜와 기술, 감성이 중요시된다.

우리 선현들의 여가는 김홍도의 여름 풍속화에 잘 표현돼 있다.
그의 ‘단원도(檀園圖)’를 보면 멀리 성곽산 밑에 소나무·오동나무·버드나무 등이 있고 후원에는 연못과 종려나무가, 열린 방문 틈으로 책상과 공작 꽁지깃을 꽂아 둔 백자 항아리가 보인다.
술상을 앞에 놓고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고 한 사람은 시를 읊으며, 부채를 든 또 한 사람은 지그시 눈을 내려 감상을 즐기고 있다.
이는 조선 선비들의 조촐하고 깔끔한 풍류를 나타낸 그림으로, 시를 읊으며 자연과 함께 여가를 즐김을 엿보게 한다.

청초 우거진 곳에/ 쟁기 벗겨 소를 매고/ 길 아래 정자나무 밑에/ 도롱이 베고 잠을 드니/ 청풍이 세우(細雨)를 몰아다가/ 잠든 나를 깨우더라.
이 한 편의 맹사성 시조에서 향수 어린 풍정을 느낄 수 있듯 우리나라는 예부터 아름답고 빼어난 삼천리 금수강산을 뽐내 왔다.
봄이면 푸른 새싹이 대지에 깔리고,
여름이면 울창한 녹음이 계곡 물소리·새소리와 어우러져 자연을 벗 삼게 만든다.
가을이면 쪽빛 하늘 아래 들판은 황금빛 물결 불붙듯 타는 단풍과 함께 깊어 가고,
겨울이면 흰 눈의 깨끗함으로 마음을 정갈케 하니
어느 계절 어느 곳이나 자연에 흠뻑 취하게 하는 우리의 산하를 어찌 잊으랴. 
나의 소중한 여가, 와이키키나 칸쿤이 아닌, 사위 가득 쏟아지는 매미소리, 빙빙 동그라미 그리는 고추잠자리 정겨운 우리네 여름 강촌을 찾아 떠나리.

                       고정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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